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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서울 동네 이름 순우리말로 알아보기 - 강남구

by Mc휴고 2022.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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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는 25개의 구가 있고 각 구마다 동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예쁜 순우리말로 마을의 의미를 잘 표현하는 형태로 존재했지만 일제강점기 때 대부분 한자로 표기되며 순우리말로 된 동네 이름이 사라졌습니다. 순우리말로 동네 이름을 표현하면 동네의 옛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됩니다. 먼저 강남구로 가보겠습니다.

 

 

 

신사동(新沙洞) - 새말 + 모래내

서울에만 신사동이 세 곳이 있어서 위에 한자로 표기를 했습니다. 강남구의 신사동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신촌리사평리에 걸쳐있던 마을이었습니다. 1914년 신촌리와 사평리를 합쳐 신사리가 되었고, 1963년에 서울시 성동구로 편입되면서 신사동이 되었고 1975년에 강남구가 신설되면서 강남구로 편입되었습니다. 지금은 서울에서도 아주 번화한 중심가라고 볼 수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광주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신촌리는 한강 남쪽에 새로 형성된 새 마을이라는 의미의 '새말'이라는 순우리 지명이 있었고, 사평리는 한강 변에 모래 많은 냇가라는 의미의 '모래내'라는 예쁜 우리 지명이 있었습니다. 서울과 조금 떨어진 한강 남쪽 시골에 모래사장이 있는 강가에 있는 새로 생긴 마을이 그림처럼 떠오릅니다. 지금의 신사동이라는 이름에서는 전혀 떠올리기 힘든 그림입니다. 그나마 뜻이라도 한자로 옮겨 의미는 알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지명을 한자화하면서 비슷한 한자음을 차용하거나 음과 뜻을 섞어 쓴 경우도 많습니다.

 

대치동 - 한티

분당선 한티역이 있기 때문에 '한티'라는 말이 익숙하긴 하지만 한티가 대치의 순우리말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재개발로 사라진 '대치동 구마을'을 순우리말로 '한티마을'이라 불렀습니다. 대치와 한티(한터)는 모두 '큰 언덕'이라는 뜻입니다. 큰 언덕이 있어서 비가 오면 물에 잠기던 동네가 금싸라기 같은 땅이 되었다니, 그리고 그 고개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지금의 대치동 모습을 보면 상상하기 힘듭니다.

 

율현동 - 반고개

율현동에서 세곡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의 이름이 반고개입니다. 밤나무가 많아서 밤고개라 불리던 것이 반고개로 변한 경우입니다. 실제로 세곡동에 반고개 식당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밤나무 '율'에 고개 '현'을 써서 한자로 율현동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어떤가요? 반고개가 더 정감가지 않으신가요?

 

개포동 - 개패 / 개포마을

개포동의 순우리말 '개패'는 '개펄'에서 변한 것입니다. 강남에 갯벌이라니? 예전에는 마을 앞 양재천에 갯벌이 있어서 개펄로 불리다가 개패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 여름 장마에 한강이 범람하여 물이 빠지면 개흙이 많이 남아있어 열 '개'에 물가 '포', 개포마을로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우스개 소리로 오래전엔 '개도 포기한 동네' 였는데, '개도 포니 타는 동네'가 되었다가 지금은 '개도 포르셰를 타는 아주 잘 사는 동네'가 되었습니다.

 

대치동 / 대청동 - 학여울

SETEC 전시장이 있는 3호선 학여울역 덕에 '학여울'이라는 순우리말 지명은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이곳은 대동여지도에 '학탄'이라고 한자로 기재되어있습니다. '탄'은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에 세게 흐르는 곳인 순우리말 '여울'의 한자어 표기입니다. 양재천 하류와 탄천이 만난 곳입니다. 발음은 '하겨울'이 아니라 '항녀울'이 옳다고 합니다.

 

 

 

포이동 - 갯둘

포이동에는 한강물이 크게 들어왔다 빠지면 '갯들'이 되었는데 '갯둘'로도 부르면서 한자어로 뜻을 따서 '포이'로 지어진 것입니다. 오래전 강남은 낭만적인 풍경에 살기에는 환경이 조금 힘들었을 것 같은 그림이 그려집니다. 끝까지 뿌리내리고 산 분들은 승자가 되었겠지만요.

 

청담동 - 청숫골

한강물이 잔잔하게 흘러 마치 연못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물이 맑고 잔잔해서 숫골이라고도 불렸다고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골'만 순우리말 같습니다. 여하튼 후에 '청담리'라고 불리다가 서울에 편입되며 청담동이 되었습니다.

 

삼성동 - 중의 벌

조선 명종 때 스님들을 대상으로 한 과거를 이곳에서 실시했다고 해서 '중의 벌'이라 불렸으며 한자로 '승과평'이라고도 했습니다. 삼성동이라는 이름은 경기도 광주군의 닥점, 봉은사, 무동도 세 마을을 일제강점기에 삼성리로 통합해서 불렸다가 서울에 편입되면서 삼성동이 되었습니다. 

 

글을 마치며 

금싸라기 같은 땅에 투자의 대상으로만 보이던 강남이 뭔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옛 서울과 떨어진 한강변 아래 한적하고 예쁘지만 한강이 범람하면 갯벌이 되기도 하고, 큰 언덕이 있어서 비가 많이 오면 물이 차던 곳도 있었습니다. 순우리말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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